10편. 단독주택 생활동선 7가지|주방·욕실·수납, 자리부터 정하자

“주방은 넓게 해주시고, 수납장은 많이 넣어주세요.”

집을 설계할 때 흔히 나오는 요청이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나면 넓은 주방 한쪽에 가전제품이 늘어서고, 청소기는 거실 구석에 기대어 있으며, 필요한 콘센트는 가구 뒤에 가려져 있을 때가 있다.

공간은 마련했는데 물건의 자리는 정하지 않은 결과다.

커피를 어디에서 내리는지, 청소기는 어디에서 꺼내 쓰는지, 아침에 가족 몇 명이 동시에 씻는지. 이런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집의 사용감을 결정한다.

8편 단독주택 평면계획에서 공간의 구성과 연결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차례다.

단독주택 생활동선은 자주 하는 일과 자주 쓰는 물건의 자리를 정하는 과정이다.

1. 장을 보고 들어오면, 짐은 어디에 내려놓을까?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고 생각해 보자. 신발을 벗고,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나누어 넣어야 한다. 그런데 물건을 내려놓을 곳이 없다면 일단 식탁이나 바닥에 짐을 펼치게 된다.

식탁에서는 아이가 공부하고 있고, 주방 조리대에는 가전제품이 놓여 있다면 장을 볼 때마다 주변부터 치워야 한다.

현관과 주방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냉장·냉동식품과 상온 식품을 나눌 자리까지 있어야 정리가 수월하다.

주방 작업대 한쪽을 비워두거나 식재료 수납장 가까이에 잠시 물건을 올려놓을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 빈 장바구니와 포장재를 어디에 정리할지도 함께 생각하면 좋다.

팬트리를 계획했다면 선반 안에 들어갈 물건과 사람이 서서 정리할 공간을 함께 살펴야 한다. 선반을 많이 넣다가 몸을 돌리거나 큰 물건을 꺼낼 자리가 부족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장을 보고 들어와 정리를 마칠 때까지의 과정을 도면 위에서 따라가 보면, 빠진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2. 주방에 가전제품을 놓고도 요리할 자리가 남을까?

도면에서는 조리대가 길고 넉넉해 보인다. 하지만 밥솥, 커피머신,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를 하나씩 올려놓으면 실제로 쓸 수 있는 면적은 달라진다.

채소를 씻었는데 도마를 펼칠 곳이 없고, 뜨거운 냄비를 내려놓으려고 옆의 물건부터 옮겨야 한다면 주방을 사용하는 내내 손이 더 간다.

주방을 계획할 때는 사용할 가전제품부터 적어보는 편이 좋다. 항상 꺼내놓을 제품과 필요할 때만 꺼내 쓸 제품을 나누면 수납과 작업대의 역할도 분명해진다.

매일 사용하는 커피머신은 자리를 고정할 수 있다. 가끔 쓰는 믹서기는 수납장에 보관하되, 꺼냈을 때 어느 작업대에서 사용할지 정해두면 된다.

그다음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고, 씻고, 손질하고, 조리해서 식탁으로 옮기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손질 중인 식재료를 내려놓을 자리와 완성된 음식을 담을 자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식사 후에도 일이 남는다. 그릇을 가져와 잔반을 정리하고, 씻거나 식기세척기에 넣고, 다시 수납해야 한다. 식기를 보관할 서랍과 음식물쓰레기 처리 위치까지 이 과정에 맞춰 정하면 움직임이 줄어든다.

🔴 가전제품의 자리를 정한 뒤에도, 실제로 요리할 조리대가 충분히 남아 있어야 한다.

3. 아일랜드와 식탁, 사람이 앉아 있어도 지나갈 수 있을까?

사진 속 아일랜드 주방은 깔끔하다. 의자는 안으로 들어가 있고, 조리대 위에는 물건이 거의 없다.

실제 생활에서는 가족이 의자에 앉아 있고, 냉장고 문이 열리며,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내는 일이 함께 일어난다.

아일랜드를 계획한다면 무엇에 사용할지 먼저 정할 필요가 있다. 재료를 손질하는 작업대인지, 간단히 식사하는 자리인지, 가족과 대화하며 요리하는 공간인지에 따라 주변에 필요한 여유가 달라진다.

특히 의자를 놓는다면 사람이 앉았을 때의 위치를 도면에 표시해야 한다. 의자를 뺀 뒤에도 뒤로 지나갈 수 있는지, 맞은편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지 살펴보자.

식기세척기 문을 내린 상태도 확인해야 한다. 기기 자체는 들어가지만 문을 열면 통로가 막히거나, 그릇을 넣는 사람이 설 자리가 부족할 수 있다.

치수만으로 감이 오지 않는다면 현재 집 바닥에 테이프로 가구의 위치를 표시해 보는 방법도 있다. 그 자리에 서고 돌아서 보면 도면으로만 보던 공간이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아일랜드와 식탁 배치 및 식기세척기 문을 연 주방 모습

4. 욕실 두 곳을 계획했다면, 동시에 사용하는 상황도 생각했을까?

아침에는 집 안의 움직임이 한꺼번에 몰린다. 한 사람은 샤워하고, 다른 사람은 양치하며, 누군가는 외출 전에 화장실을 찾는다.

단독주택을 기획할 때는 욕실 두 곳을 기본안으로 놓고 검토해 볼 만하다. 가족이 같은 시간에 준비할 때 기다림을 줄이고, 가족용과 손님용의 사용 관계를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최종 개수와 위치는 집의 규모, 가족 구성, 예산에 맞춰 조정하면 된다.

2층 주택이라면 각 층의 사용 편의를 살피고, 단층 주택이라면 침실과 공용공간에서 접근하는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욕실 안에서는 씻기 전후의 행동까지 이어서 생각해야 한다. 갈아입을 옷을 놓을 곳, 마른 수건을 꺼낼 곳, 사용한 옷을 모을 자리가 정해져 있어야 세면대 위와 문고리에 물건이 쌓이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주방과 욕실 두 곳에서 물을 함께 쓴다면

욕실을 두 곳 계획할 때 미리 짚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동시에 물을 사용할 때의 수압과 물의 양이다.

한쪽 욕실에서는 샤워하고, 다른 욕실에서는 세면대를 사용하며, 주방에서는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이때 샤워기의 물줄기가 눈에 띄게 약해진다면 가족끼리 물 쓰는 시간을 조절해야 하는 불편이 생긴다.

평소 사용 시간이 잘 겹치지 않으면 문제를 모르고 지낼 수도 있다. 반대로 입주 후 가족이 한꺼번에 준비하는 날에야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따라서 설계·시공 단계에서 인입수압과 배관 규격을 확인하고, 주방과 욕실을 동시에 사용하는 조건을 놓고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 급수 설계기준도 필요한 압력과 유량을 함께 확보하도록 하고, 공급이 부족한 조건에서는 가압장치를 마련하도록 규정한다.

보완이 필요한 조건이라면 원인에 맞는 대책을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가압설비가 필요하다면 설치 방식과 장비 공간, 전원, 배관 연결까지 미리 정하고, 추가 보완에 대비할 공간과 연결 조건도 협의해 두는 편이 좋다.

공사가 끝난 뒤에는 주방과 욕실 두 곳에서 실제로 물을 함께 사용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한 곳씩 틀었을 때 물이 잘 나온다는 것과 가족이 동시에 사용할 때 충분히 공급된다는 것은 확인 조건이 다르다.

관련 내용은 국가건설기준센터의 급수설비 기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구체적인 설비 계획은 다음 편에서 이어서 다룬다.

5. 청소기 자리는 팬트리 말고도 찾을 수 있다

수납공간을 이야기하면 팬트리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매일 꺼내 쓰는 청소기의 자리는 실제로 사용하는 위치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 애매하게 남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가구를 놓기에는 작지만 청소기와 청소도구를 넣기에는 알맞은 자리가 나올 수 있다.

이런 공간을 수납으로 활용하면 청소기를 꺼내기 위해 다른 방이나 팬트리까지 다녀올 필요가 줄어든다. 청소를 마치고 제자리에 돌려놓기도 편하다.

물론 남는 공간이라고 모두 수납장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로를 좁히지 않는 범위에서 청소기 본체와 거치대가 들어가는지, 문을 열고 꺼낼 자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충전식 제품이라면 전원 위치도 함께 정해야 한다.

수납 계획은 이런 식으로 물건마다 접근하면 구체적이 된다. 매일 드는 가방은 귀가 후 내려놓는 곳 가까이, 자주 쓰는 주방도구는 조리하는 자리 가까이, 계절용품은 사용 빈도에 맞는 곳에 두는 식이다.

현재 집에서 늘 바깥에 나와 있는 물건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 물건은 돌아갈 자리가 없거나, 정해진 자리가 사용하기 불편할 가능성이 있다.

🔴 단독주택 수납은 자주 쓰는 물건의 위치를 정하고, 그 주변에서 활용할 공간을 찾는 방식으로 계획할 수 있다.

거실과 주방 사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청소기 수납장과 충전 콘센트

6. 콘센트는 몇 개보다, 어디에 어떤 높이로 둘지가 중요하다

커피머신 자리는 정했는데 콘센트가 멀다. 청소기를 충전하려고 보니 수납장 안에 전원이 없다. 가끔 사용하는 조리기기를 꺼낼 때마다 멀티탭을 찾아야 한다.

콘센트 계획을 뒤로 미루면 이런 불편이 생길 수 있다.

먼저 평소 무엇을 자주 쓰는지 살펴보고 제품별 사용 위치를 정해야 한다. 항상 놓아두는 제품은 물론, 필요할 때만 꺼내 사용하는 제품도 포함해야 한다.

커피머신과 전기주전자를 조리대 위에서 사용한다면 그 자리에서 플러그를 꽂고 뺄 수 있어야 한다. 청소기는 거치대와 충전선의 위치에 맞춰야 하고, 식탁에서 전기 조리기기를 사용할 계획이라면 그곳까지 전원을 어떻게 연결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다음 콘센트를 높게 설치할지, 낮게 설치할지 정한다. 같은 벽이라도 앞에 놓이는 가구와 제품에 따라 알맞은 위치가 달라진다. 가구에 가려 접근하기 어렵거나, 서랍을 여는 데 플러그가 걸리지 않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면에 다음 내용을 적어두면 협의가 쉬워진다.

  • 그 자리에서 사용할 제품
  • 상시 사용하는지, 필요할 때 꺼내 쓰는지
  • 가구와 제품의 높이·깊이
  • 플러그를 꽂고 빼는 위치와 전선이 지나갈 길

동시에 사용할 제품의 소비전력도 전기설계 담당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구체적인 회로와 용량은 다음 편에서 다루되, 제품을 사용할 자리는 지금 정해두어야 한다.

🔴 물건의 자리와 콘센트를 함께 계획하면, 사용할 때마다 멀티탭을 가져와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

7. 가족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장면을 도면에 넣어보자

한 사람씩 움직이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집도 가족이 동시에 생활하면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요리하는 사람 뒤로 아이가 냉장고를 열러 오고, 식탁에 앉은 가족 뒤로 그릇을 들고 지나가야 한다. 욕실에서 나온 사람과 빨래를 들고 가는 사람이 좁은 통로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단독주택 생활동선을 검토할 때는 이런 장면을 도면 위에서 따라가 보는 것이 좋다.

생활 장면확인할 부분
아침 외출 준비욕실·옷장·현관에서 서로 기다리거나 비켜야 하는가?
저녁 식사 준비요리하는 자리와 냉장고·식탁을 오가는 길이 겹치는가?
청소와 정리청소기를 꺼내고 사용한 뒤 돌려놓기 쉬운가?
주방·욕실 동시 사용가족이 함께 물을 사용해도 불편이 없는가?

2층 주택이라면 물건을 들고 계단을 오가는 횟수도 살펴야 한다. 침실과 옷장은 2층에 있는데 세탁실이 1층에 있다면 빨랫감과 정리한 옷을 계속 옮겨야 한다.

그 배치가 가족의 생활에 맞는지 확인하고, 각 층에서 자주 쓰는 수건이나 청소용품을 나누어 보관할 자리도 검토할 수 있다.

설계 미팅에서도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도움이 된다. “수납을 많이 넣어주세요”라는 요청에 더해 “거실과 주방을 청소한 뒤 이 자리에서 바로 충전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식이다.

그러면 필요한 수납장의 크기와 위치, 문이 열리는 방향, 콘센트 자리까지 함께 검토할 수 있다.

설계 미팅 전, 지금 집에서 자꾸 손이 가는 일을 적어보자

청소기를 쓰려고 다른 물건부터 치우는 일, 조리하려고 가전제품을 옮기는 일, 콘센트가 없어 멀티탭을 가져오는 일. 익숙해서 그냥 넘기던 행동 안에 새집에서 해결할 문제가 들어 있다.

이런 장면을 적거나 사진으로 남겨 설계 미팅에 가져가면 좋다. 무엇을 어디에서 사용하고, 사용한 뒤 어디에 둘 것인지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면 된다.

새 도면을 받았을 때도 그 장면을 다시 대입해 보자. 물건을 꺼내고 사용하는 순간부터 정리를 마칠 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 11편에서는 이 생활계획을 바탕으로 전기·조명·냉난방·급배수 설비를 어떻게 준비할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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