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류 역사에는 ‘난방도 식사도 셀프’였던 시절이 있다.
유럽으로 이사 간다고 하면 무슨 생각부터 들까?
파리의 거리, 로마의 건축물, 알프스가 보이는 집.
그런데 시간을 수만 년 전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아주 달라진다.
에펠탑도 없고, 콜로세움도 없다.
집을 보러 왔는데, 일단 발가락부터 시리다.
당시의 생활을 오늘식 입주 안내문으로 바꿔보면 대략 이런 느낌이다.
난방: 직접 불을 피울 것.
식사: 재료 확보부터 직접 할 것.
주변 환경: 아름다움. 단, 나를 먹으려는 동물이 있을 수 있음.
먼저 살던 이웃: 네안데르탈인.
생각했던 유럽 생활과는 조금 다르다.
그런데 이 까다로운 환경에서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가죽을 손질하고, 먹거리를 구하고, 불을 이용했다. 훗날 현생인류의 유적에는 작은 조각과 악기까지 등장한다.
유럽 인류 역사는 ‘추우니까 동굴에 들어갔다’로 끝내기에는 지나치게 다채롭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제법 놀라운 반전이 있다.
낯선 이웃인 줄 알았던 네안데르탈인이, 일부 현생인류에게는 실제 조상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 앞선 이야기: 아시아 인류 역사 8가지|우리 조상보다 먼저 온 사람들
1. 유럽의 첫 주민을 찾았더니, 입주 시기가 백만 년 단위다
먼저 시간을 정리해 보자.
‘유럽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을까?’라는 질문에서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와 같은 종인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앞서, 다른 인류가 유럽에 살았다.
스페인 아타푸에르카의 시마 델 엘레판테 유적에서는 약 140만~11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얼굴 일부 화석이 보고됐다.
더 오래된 활동 흔적으로 해석되는 자료도 있다. 루마니아 그러운차누에서는 약 195만 년 전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되는 동물 뼈에 남은 자국을 인류의 도구 사용 흔적으로 해석한 연구가 나왔다. 다만 이곳에서 그 일을 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것은 아니다.
반면 독일 라니스에서는 적어도 약 4만 5천 년 전 유럽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의 흔적이 확인된다.
| 현재의 위치·유적 | 시기 | 남아 있는 단서 |
|---|---|---|
| 루마니아 그러운차누 | 약 195만 년 전 또는 그 이전 | 인류가 도구로 손질한 것으로 해석되는 동물 뼈 |
| 스페인 시마 델 엘레판테 | 약 140만~110만 년 전 | 초기 인류의 얼굴 일부 화석 |
| 독일 라니스 | 적어도 약 4만 5천 년 전 | 호모 사피엔스의 화석과 활동 흔적 |
모두 같은 사람들이 순서대로 이사한 기록은 아니다. 종도, 시대도, 남은 증거도 다르다.
그런데 이 긴 시간을 ‘옛날 원시인’이라는 말 한마디로 묶으면 어떻게 될까?
100만 년 넘게 차이 나는 사람들을 한 동네 주민으로 만들어버린다.
우리에게는 다 옛날이지만, 그들끼리는 서로를 ‘옛날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먼 사이다.
2. 옆집 사람이 좀 튼튼하다 했더니, 네안데르탈인이었다
이제 유럽 생활사의 중요한 등장인물을 만나보자.
네안데르탈인. 학명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다.
호모 사피엔스와 가까운 다른 인류로,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오랜 시간 살아갔다.
대체로 몸이 다부지고 어깨와 몸통이 넓었으며, 눈썹 위 뼈가 두드러졌다. 오늘날 사람보다 머리뼈가 길고 낮은 특징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종종 우락부락한 얼굴로 돌몽둥이나 휘두르는 사람처럼 그린다.
실제 흔적을 보면 그 선입견이 꽤 민망해진다.
네안데르탈인은 돌도구를 만들었고, 재료를 가공하는 기술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유럽의 네안데르탈인 관련 유적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을 가공해 얻은 타르를 접착제로 이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접착제다.
돌을 깨뜨려 날을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재료를 붙여 활용할 물질까지 마련한 것이다.
동네에서 사냥 좀 하던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재료 가공까지 하고 있었다.
철물점이 생기기 한참 전부터, 필요한 물건은 직접 만들어 쓰고 있었다.
3. 알프스 뷰보다 급한 것은, 오늘 밤 발가락이었다
유럽의 옛날 풍경을 떠올리면 눈밭과 매머드가 자동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유럽 전체가 언제나 얼음으로 덮여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숲과 초원, 기온과 먹거리가 달랐다.
그렇다고 추위가 과장된 문제였다는 뜻도 아니다.
독일 라니스의 약 4만 5천 년 전 환경을 분석한 연구는 당시 현생인류가 차가운 초원이나 툰드라와 같은 환경에서도 활동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이라면 날씨 앱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번 주는 그냥 집에 있자.”
그런데 그 집에 보일러가 없다.
먹을 것도 집 밖에 있다.
경치를 감상하기 전에 몸을 보호하고, 먹거리를 구하고, 쉴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동굴과 바위 그늘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입구가 어디로 열려 있는지, 바닥이 어떤지, 주변에서 물과 연료를 구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중요했을 것이다.
‘동굴 있음’과 ‘살기 편함’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거처가 전부 동굴이었던 것도 아니다.
훨씬 후대 현생인류의 사례지만, 프랑스 팽스방 유적에는 센강가에 마련한 야외 캠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덕과 도구, 동물 뼈의 배치를 통해 사람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연구한다.
동굴이든 강가의 거처든, 잠자리만 정하면 끝나는 생활은 아니었다.
그날의 연료와 먹거리까지 계속 마련해야 했다.
월세가 없다고 생활비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4. 옷 사러 갔는데, 원단이 도망간다
추위를 버티려면 몸을 덮을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옷가게가 없다.
가죽을 이용하려면 우선 재료를 구해야 한다. 동물에게서 얻은 가죽을 떼어내고, 불필요한 조직을 제거하고, 쓸 수 있게 손질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옷을 고르다가 사이즈 때문에 고민한다.
그때는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원단이 들판을 뛰어다닌다.
게다가 구했다고 곧바로 부드러운 외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가죽을 생활에 쓸 재료로 바꾸는 데에는 손과 시간,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프랑스의 네안데르탈인 유적에서는 가죽을 매끄럽게 손질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해석되는 뼈도구가 발견됐다. ‘리수아르’라고 부르는 도구다.

네안데르탈인의 가죽 가공 기술을 표현한 역사 복원 상상도. 도구의 구체적인 형태와 작업 장면은 상상이다.
가죽을 다루는 기술이 단순히 머릿속 상상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이 도구만으로 당시 외투의 모양이나 바느질 방식까지 알아낼 수는 없다.
그래도 가죽을 벗겨 어깨에 툭 걸치면 겨울 준비가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은 고쳐야 한다.
그 시대의 옷 한 벌에는 사냥과 채집, 재료 손질과 제작의 수고가 묻어 있었을 것이다.
‘내 옷 내가 샀다’보다, ‘내 옷 내가 마련했다’에 훨씬 가까운 생활이었다.
5. “고기 좀 구해왔어.” 그런데 규모가 코끼리다
이제 저녁을 구할 차례다.
마트가 없으니,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의 식량 이용 흔적 가운데는 규모부터 심상치 않은 것이 있다.
독일 노이마르크노르트에서는 약 12만 5천 년 전 곧은엄니코끼리의 사체를 체계적으로 손질한 흔적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풍부한 도구 자국과 동물의 연령·성별 구성 등을 살펴, 네안데르탈인이 이 거대한 코끼리들을 사냥하고 식량으로 이용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했다.
“오늘 고기 좀 구했어.”
그 말을 들었는데, 저 멀리 코끼리가 누워 있다면?
저녁 준비의 규모가 갑자기 달라진다.
커다란 동물 한 마리는 많은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 동시에 엄청난 손질 작업도 남긴다.
살을 분리하고, 지방을 얻고, 먹을 수 있는 부분을 처리해야 한다. 많은 양의 식량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더 큰 규모의 모임이나 보관 방식이 있었는지도 연구되는 문제다.
다만 정확히 몇 명이 모여 어떤 순서로 사냥했는지까지 현장 영상처럼 재생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큰 동물을 쓰러뜨렸다는 한 장면만으로 그들의 일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냥의 성공은 저녁 준비의 끝이 아니라, 다음 일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늘 이런 고기만 먹었을까?
해안에서는 식탁이 달라졌다.
포르투갈 피게이라 브라바 동굴의 약 10만 6천~8만 6천 년 전 흔적에는 조개류 등 해양 무척추동물과 물고기, 해양 동물, 잣을 비롯한 다양한 먹거리가 나타난다.

약 10만 년 전 포르투갈 해안의 먹거리 이용을 표현한 역사 복원 상상도.
내륙에서는 큰 동물을 이용하고, 해안에서는 바다의 먹거리도 활용했다.
같은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전국 공통 식단표를 돌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식생활의 지역 차이가 있었다.
6. 치석이 수만 년 뒤에 식단을 폭로했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그 사람들이 뭘 먹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는데?”
동물 뼈와 식물 흔적도 중요하지만, 뜻밖의 증인이 하나 더 있다.
치석이다.
치아에 붙어 굳은 침착물 속에는 미생물과 먹거리에서 비롯된 DNA가 남을 수 있다.
연구진은 스페인 엘시드론과 벨기에 스피의 네안데르탈인 치석을 분석했다.
스피의 시료에서는 털코뿔소와 야생 양 같은 동물의 흔적이, 엘시드론의 시료에서는 버섯과 잣 등 식물성 먹거리의 흔적이 확인됐다.
먹방 영상도 없고, 식당 영수증도 없다.
그런데 치석이 수만 년을 버티다가 식단의 단서를 내놓았다.
본인은 평생 몰랐을 것이다.
자기 치아에 붙은 것이 훗날 학술지에 실릴 줄은.
다만 일부 시료에서 고기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그 사람이 평생 채식만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남은 자료의 범위와 분석의 한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 연구는 질병과 대응의 단서도 제시했다. 치아에 농양이 있던 한 사람에게서 포플러 유래 DNA 등이 확인돼, 식물을 통증 완화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논의됐다.
실제로 어떤 목적으로 썼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오늘날처럼 몸을 얼마나 자주 씻었는지, 입안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다.
치석이 알려주는 것이 꽤 많아도, 그 사람의 하루 전체를 생중계해주지는 않는다.
7. 낯선 이웃인 줄 알았는데, 우리 집안 사람이었다
이제 유럽 생활사의 큰 반전이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에서 한동안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런데 그 관계를 ‘서로 쳐다보다가 한쪽이 사라졌다’ 정도로만 그리면, 중요한 가족 이야기를 놓친다.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약 4만 년 전 현생인류 오아세 1의 DNA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이 사람에게 불과 4~6세대 전의 네안데르탈인 조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수십만 년 전 멀리 갈라진 공통 조상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가계를 몇 세대 거슬러 올라가면 네안데르탈인 조상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옆 동네에 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살았다’던 이야기가 갑자기 달라진다.
그중 누군가는 실제로 같은 집안의 조상이 된 것이다.
물론 어떤 계기로 만났는지, 무슨 말을 나눴는지, 어떤 관계였는지까지 DNA로 읽을 수는 없다.
과학이 가계의 단서를 찾아냈다고 혼인신고서까지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 사실은 우리의 익숙한 그림을 바꾼다.
서로 다른 인류는 만나고, 일부는 아이를 낳았고, 그 후손이 이어졌다.
인류의 가계도는 가지가 각자 뻗기만 한 나무보다 훨씬 복잡했다.
8. 살기도 바쁜데, 누군가는 피리까지 만들었다
먹을 것을 구하고, 추위를 피하고, 가죽까지 손질한다.
이 정도면 하루가 끝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유럽의 현생인류 유적에는 당장의 끼니와는 다른 물건도 남아 있다.
피리와 작은 조각이다.
독일 남부 슈바벤 쥐라의 동굴 유적들에서는 약 4만 년 전을 전후한 시기의 악기와 동물 조각, 장신구가 발견됐다. 뼈와 상아로 만든 피리도 연구됐다.

약 4만 년 전 유럽 현생인류의 악기 이용을 표현한 역사 복원 상상도. 구체적인 연주 장면은 상상이다.
필요한 구멍을 내고, 재료를 다듬고, 소리를 낼 수 있는 물건을 만들었다.
작은 조각 중에는 동물의 모습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특징을 함께 가진 형상도 있다.
매일 살아남는 일에 쫓기기만 했다면 설명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다.
누군가는 소리를 만들고, 무언가를 표현하고, 손에 쥘 만큼 작은 형상을 깎았다.
그렇다고 모닥불 주변에서 어떤 노래를 연주했는지까지 아는 것은 아니다. 악기가 남았다고 공연 실황까지 남은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상상은 하게 된다.
추운 날을 버티고 돌아온 뒤, 누군가 피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잘 불었을 수도 있고, 옆 사람이 그만 불라고 했을 수도 있다.
그 부분은 끝내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아주 오래전 사람들의 생활에도 ‘오늘 무엇을 먹었나’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있었다.
9. 그렇게 잘 버티던 네안데르탈인은 왜 사라졌을까?
접착제도 이용하고, 가죽도 손질하고, 다양한 먹거리를 구했다.
현생인류와 후손까지 남겼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은 왜 지금 우리 곁에 별도의 인류 집단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유럽에서 이들의 마지막 흔적은 대체로 약 4만 년 전 무렵으로 연구된다.
이유를 한 가지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변동하는 기후, 작고 흩어진 집단, 자원 경쟁과 현생인류와의 관계 등 여러 요인이 검토된다. 지역별로 사라지는 시기도 같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현생인류가 어느 날 유럽에 들어가 네안데르탈인을 한꺼번에 몰아냈다는 영화 한 편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묘한 사실이 남는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일부 유전적 흔적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이어졌다.
유럽 인류 역사의 등장인물이 무대에서 내려간 뒤에도, 그 흔적 일부는 후대의 몸속에 남은 셈이다.
유럽 인류 역사는, 얼어붙은 발가락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유럽의 오래된 사람들을 떠올리면 돌도구와 두꺼운 가죽옷부터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생활의 흔적은 생각보다 훨씬 풍성하다.
먹거리를 처리하는 기술이 있었다. 재료를 가공하는 손길이 있었다. 환경에 따라 식탁을 바꾸는 생활이 있었다.
서로 다른 인류가 만나 후손을 남겼고, 현생인류의 유적에는 악기와 조각도 남았다.
이 모든 사람이 같은 시대에 같은 마을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세대와 서로 다른 환경이 만들어낸 긴 이야기다.
그래도 그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박물관 유리장 안의 먼 존재들이 조금 가까워진다.
그들에게도 오늘 밤 몸을 쉬게 할 곳이 필요했고, 다음 끼니가 필요했다.
어쩌면 기껏 손질한 가죽을 누군가 가져가면 짜증이 났을 것이고, 모처럼 구한 먹거리를 나누며 기분이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그 감정까지 화석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피리와 조각이 남아 있다는 사실 앞에서는, 그들의 하루가 생존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에 먼저 살던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떠올리는 것보다 훨씬 솜씨 좋고 생활이 풍부한 이웃이었다.
다음 기원편에서는 시선을 오세아니아로 옮긴다.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가 기다린다.
앞에 바다가 있다.
걸어서 해결하던 이사에, 바닷길이 등장한다.
BUILDINSIGHT | 세상읽기 — 세계 사람들의 생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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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인류 역사 8가지|우리 조상보다 먼저 온 사람들
기원편 처음부터
👉 인류의 기원|300,000년 전 인간은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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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생활 비유와 상상 속 대사는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입니다. 각 유적은 서로 다른 시대·지역·인류의 사례이며, 하나의 집단이 같은 시기에 누린 생활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미지는 AI 역사 복원 상상도입니다.